
비행장은 과해리·방화리·송정리·부천군 오정면 오쇠리의 일부에 걸쳐 조성되었고, 직경 약 십여 리·둘레 약 사십여 리에 이르는 규모였다. 1938년 일제가 여의도 소형비행장으로는 전쟁 수행이 어렵다며 각지에 응급 비행장을 개설하는 과정에서 군용 비행장으로 기공했는데, 학생과 주민을 대거 동원해 곡괭이·삽과 ‘목걸이’(가마니를 꿰어 둘이 팔로 메고 흙을 나르는 방식)로 공사를 했다.
당시 중학생의 수학년수를 1년 줄여 ‘보국대’로 강제 동원했고, 병력 충원을 위해 소집연령 이전의 인원까지 마구잡이로 끌어갔다고 전한다. 1945년 패전 시점에도 공사는 진행 중이었고, 이후 미 공군이 기계를 투입해 완공했다. 이 비행장은 “미국이 북한·중국·소련을 폭격할 대륙 최첨단 비행장”으로서 6·25전쟁 때 가치를 발휘했다고 서술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는 ‘한미 공동운행협정’을 맺어 국제공항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1960년 3월 유엔군사령부 관할 책임 이양 및 공동사용에 관한 기본정책을 수립했다. 이어 교통부가 1961년 4월 1일 미 공군으로부터 착륙시설을 포함한 공동사용구역의 유지·보수 책임을 인수했고, 같은 해 7월 5일 김포공항 이양식을 거행했다.
지도 - L752 - 3121 III - Kimpo - Korean War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