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옥동(照玉洞, ‘초록동’)은 두 갈래 전승이 함께 전한다. 첫째, 임진왜란 때 가양동 뒷산 궁산에서 전라창의사 김천일 장군, 전라소모사 변이중 장군, 강화의병장 우성전 장군 등이 인천·강화·김포·통진·양천 의병을 지휘해 한강을 건너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에 참전했는데, 그때 양천 의병으로 전사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며 ‘초록’이라는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갑옷을 입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한다. 이 일로 마을을 ‘초록동’이라 불렀다는 설이며, 위치는 화곡초등학교 뒤 거성빌라 뒷편 사거리 근방의 약 50번지 부근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정낙윤이라는 인물과 그 집의 소작농가 2가구 등 모두 3가구가 살았고, 정낙윤은 독립운동가였다고 전한다. 다만 ‘초록’의 후예가 정낙윤인지, 두 가문이 무관한지, 혹은 정낙윤의 독립운동 때문에 ‘초록동’ 지명이 굳어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점을 확인하려고 옛 양동면장 정낙윤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위해 힘썼다는 김정묵 어른을 찾아 뵈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고, 후손도 찾지 못했다는 구술이 남아 있다. 둘째, ‘조옥동’이라는 본래 지명은 산중턱의 흰 돌이 옥(玉)처럼 비쳐 붙은 이름이라는 해석이며, 이 ‘조옥동’이 ‘초록동’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다.
지도 - 1913년 일본제국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경성지형도 | 국토정보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