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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리(陵里)는 능골·능말(농말)·심울(沈蔚, ‘심씨마을’)로도 불린 방화‧개화산 일대의 옛 자연마을로, 고려 말 왕릉지로 점쳐졌으나 왕기가 서울로 빠진다는 대신들의 만류로 말뚝만 박아 능지임을 표시하고 누구도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 전승이 있다.
조선 중종 때 좌의정 심정(1471~1531)이 개화산 아래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경색”이라 자랑했으며, 가양동에 별장을 두고 드나들었다고 한다. 인조가 생부 원종의 능 이장을 검토하며 이곳을 다시 능지로 삼으려 했으나, 주산(개화산, 131.2m)에서 휘어 내려오는 우백호가 없어 장손이 없고 형제 간 정권 다툼이 잦을 자리라는 반대와, 왕릉에는 골짜기 100개가 갖춰져야 하나 이곳은 99개뿐이라는 이유로 서쪽 김포 풍무리의 장릉지로 옮겼다.
고려와 조선 두 차례에 걸쳐 능지로 선정될 뻔하다 취소된 사정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고, 뒤이어 능지 뒤편 들과 모퉁이를 따라 붙은 지명과 함께 오늘까지 능리·능골로 전해진다. 행정‧지명사로는 삼정면 약 6리로 기록되며, 1914년 행정개편 후 김포군 양서면 체계에 편입되어 방화리 권역 지명으로 이어졌다.
지도 - (B120)종이지도_1963_공항_SH3760836301_025k | 국토정보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