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유래

화곡리(禾谷里)

운영자

2026-04-15


화곡(禾谷, 바른골)은 땅이 기름지고 좌우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 덕에 벼가 잘 자라 ‘벼 골짜기’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조선시대 양천군 남산면 화곡리로 기록되었고 행정 변천을 거쳐 오늘의 화곡동이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어느 해 가을 양천현감이 골짜기 사이로 비단처럼 누렇게 익은 벼가 펼쳐진 풍경을 보고 “골짜기 사이에 기름진 벼가 잘되는 마을”이라 하여 화곡리라 불렀고, 한자 표기는 통상 禾谷이나 木谷 표기도 전한다. 

옛 화곡리는 화곡5동 양서 1·2단지 아파트(1004번지) 정문 옆에서 성모병원 쪽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강서로를 건너 화곡3동 1024번지 조흥은행 건물 옆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강서로 개설 이전 자연 형성된 길 주변을 가리키며, 이 고개에서 화곡1·7동과 곰달래 마을 너머 신월동까지 조망된다. 

주민 전승으로는 화곡본동이 화곡 일대 최초의 주거지였고 이에 따라 1970년 12월 31일 화곡제2동이 화곡본동으로 동명이 변경되었다고 하나(확실하지 않음), 옛 화곡리의 범위는 까치산(봉제산줄기)을 중심으로 화곡국민학교 뒤 조옥동(照玉洞, ‘초록동’) 3가구, 화곡7동 가로공원 근방 새까지마을 두어 가구, 더부리고개(백구사고개) 너머 더부리 마을 몇 가구를 아우르며, 이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늘날 화곡본동·화곡1동·화곡7동·화곡8동 등으로 나뉘었다.


지도 - 1913년 일본제국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경성지형도 | 국토정보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