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수는 개화산 북쪽 상봉, 속칭 ‘봉화뚝’에 설치된 조선 시대의 통신 시설이다. 전라도 순천군 돌산도에서 시작한 봉수 신호는 충청도·경기도 해로를 거쳐 김포군 냉정산에 이르고, 여기서 개화산 봉수가 서쪽 냉정을 받아 동쪽으로 서울 목멱산(남산) 제5서봉에 전달하였다.
개화산 봉수는 조선 말기에 폐지되었고, 6·25전쟁 때 미군부대 주둔으로 군사시설이 들어서면서 흔적이 사라졌다. 당시 통신은 역마와 봉수 두 방법이 있었으며, 봉수는 야간에는 불빛(봉화), 주간에는 연기를 사용해 국경 상황을 신속히 보고했다.
신호 규칙은 무사 시 1거, 적의 출현 시 2거, 국경 접근 시 3거, 침범 시 4거, 접전 시 5거를 올렸다. 봉수대는 전국에 623개소가 있었으며, 남산 상봉에는 5개 봉수대가 집중되어 있었다. 제1거 표준은 함경도 경홍, 제2거는 남쪽 다대포, 제3거는 평안도 만포진, 제4거는 의주, 제5거는 전라도 순천군에서 시작해 서울 주변 산봉우리들을 거쳐 남산으로 집결했다.
현재 개화동 산40-1에 있는 봉수대는 새로 제작한 것으로 원래 위치는 군부대로 인하여 갈 수 없게 되었다.
지도 - 양천군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