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미산·염창산·쥐산(엄지산·인공폭포산)은 멀리서는 하나의 산처럼 보였으나, 가까이서는 염창산을 가운데 두고 증미산–염창산–쥐산 순으로 이어진 세 봉우리였다(겸재 정선의 그림·고지도 근거). 지금은 산의 형상을 또렷이 남긴 것이 증미산뿐이고, 염창산은 주거지로 덮여 산의 면모가 사라졌으며 염창동 100번지 꼭대기의 옛 치성단 자리만이 산이었음을 보여준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뒤 조선총독부의 안양천 개수로가 선유봉 쪽으로 흐르던 물길을 염창산과 쥐산 사이로 돌리면서, 본래 육지로 이어지던 두 봉우리는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갈라졌다. 영벽정과 이수정은 쥐산·염창산 주변 누정으로 전하며, 염창동 100번지 치성단 자리를 영벽정 터로, 염창산 동쪽 산줄기 강변 중턱을 이수정 자리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현재 두 누정의 옛 터는 개발로 확인이 어렵다.
한강변 북쪽에는 두미암(斗尾岩)이라 불린 바위 경승이 있었고, 이수정은 그 동남쪽 줄기, 영벽정은 서북쪽 줄기에 있었다고 전한다. 증미산은 염창동에 속하되 등촌동 북쪽 한강변을 마주하고 남쪽으로 봉제산까지 산줄기가 이어졌으며, 이 등마루를 따라 취락이 형성되어 오늘의 등촌동 지역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조운선이 드나들던 때 증미산 앞 여울에서 배가 자주 전복되어 사람들이 물속의 쌀을 건져 올렸다는 전승에서 ‘건질 증(拯)·쌀 미(米)’를 쓴 ‘증미’ 지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쥐산은 한강가에 위치한 산으로 모양이 쥐가 웅크린 모습과 같다 하여 ‘쥐산’이라 불리고, 분가루 같은 백토 때문에 바람 부는 날 근방이 하얗게 보여 ‘분동산’이라 하며, ‘소엄지산’·‘인공폭포산’으로도 불린다. 양화나루 근처 괭이산(仙遊峯·선유봉)이 고양이가 발톱을 세운 형상이라면, 쥐산은 먹이를 앞에 둔 쥐가 도망칠 듯한 자세라는 데서 이름이 대칭적으로 전한다.
쥐산 북동쪽의 염창동은 강가의 작은 포구 마을, 서쪽은 산협 평지를 이용한 농가가 산재한 한적한 마을이었고, 아랫염창 부근의 뜻밖의 이변 이후 쥐산에 ‘귀신바위’ 설화가 생겨 전한다. 소엄지산(쥐산)은 봉우리가 3개인 가파른 산으로 목2동 쪽의 대엄지산(용왕산·왕대산)과 연결되어 있었고, 지금의 양화교 자리와 그 아래 안양천 부근은 낮은 평지였으며, 나야가라 호텔 맞은편 소엄지산 아래 ‘연지’에는 연꽃이 많아 호수처럼 보였다.
소엄지산과 성산대교 사이 영등포수원지 근방이 본래 안양천 물길이었으나, 1929~1937년 9개년 토목공사로 안양천 하구를 염창동 쪽으로 돌려 쥐산 서쪽으로 수로가 변경되었다. 이 대규모 방제공사와 뒤이은 김포공항·공항로 건설에 필요한 석재를 공급하기 위해 소엄지산(쥐산) 한강변 쪽에 채석장이 운영되면서 산의 규모는 5분의 1 이하로 줄었고, 두미암·이수정·영벽정 등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후 현재의 수로를 기준으로 일부 향토사 기록이 이수정 위치를 염창동 100번지 치성단 자리로 지목하는 등 위치 혼란이 생겼다. 한편 “염창동의 유일한 산으로 남아있는 염창산을 쥐산이라 부른다”는 서술도 전하나, 이는 틀린 말이다.
지도 - KYKH001_0000_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