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악루(小岳樓)와 세수대 바위 소악루는 원래 가양동 한강변의 절경에 세워진 악양루의 옛터에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李柔)가 벼슬을 버리고 다시 지은 누정이다. 악양루라는 이름은 이곳 경치가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에 버금간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유는 소악루를 세운 뒤 조해헌, 조관빈, 윤봉조, 이병연 등 명사들과 시회와 풍류를 즐겼다.
현재는 옛터만 남아 있고, ‘세수대 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1740년 가을,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鄭敾)은 약 5년간 매일 소악루에 올라 봉화를 살피며(직무상 동서남북의 봉화를 점검), 한강변 풍경을 그렸다. 이 그림들은 「한수주유(漢水舟遊)」로 묶여 오늘날 한강변 옛 모습을 전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특히 파산(궁산) 기슭 소악루에서 바라본 일출은 남산(목멱산)에서 해가 떠오르는 듯 보였다. 1740년 7월, 사천 이병연(1671~1751)은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정선과의 우정을 기리며 「목멱조돈(木覓朝暾)」이라는 시를 보냈다. 시에는 새벽빛이 한강에 비치고, 아침마다 남산 일출과 저녁의 안산 봉화를 바라보는 정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겼다. 정선은 이를 답하며 그림을 그려 보냈다.
사천은 또 「안현석봉(鞍峴夕烽)」이란 시를 지어, 인왕산 서쪽 안현의 봉화를 살피는 정선을 그렸다. 시에는 저물녘 산빛과 봉화, 그리고 양천에서의 소박한 생활이 묘사되었다. 정선은 이에 파산 기슭에서 안현을 바라본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에는 파산 아래 소악루, 탑산, 광주바위, 그리고 ‘소동정호’라 불린 넓은 한강 수면이 호반처럼 펼쳐져 있었다. 소악루는 초가지붕의 2층 누각 형태로, 파산 자락 끝의 탑산과 어우러져 은은하고 친근한 풍경을 자아냈다.
지도 - KYKH001_0000_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