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유래

양천길

운영자

2026-04-14


양천길은 강서구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길로, 강화도로 귀양 가는 길과 강화도령이 철종으로 즉위하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던 길 등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이 길은 양천지방에 최초로 만들어진 길이자, 김포·강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대동아전쟁 준비를 위해 국방도로(현 공항로)를 개설하기 전까지, 김포·강화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고려시대에는 몽고 침입 당시 고종이 이 길을 통해 강화도로 피신했고,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우성전·변이중 등의 의병장들이 양천 의병을 이끌고 양화도 전투, 선유봉 전투 등에서 활약했으며, 권율 장군을 지원하기 위해 삼남 지방 의병들이 이 길을 통해 가양동 궁산으로 집결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인조가 이 길을 지나 가양동 양천현아에서 하룻밤 유숙한 뒤 강화로 피난하였고, 영창대군은 어린 나이에 이 길을 통해 강화로 유배되어 죽임을 당했다. 또한 많은 선비와 정객들이 이 길을 통해 강화로 귀양을 갔기에 ‘눈물의 길’, ‘슬픔의 길’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강화도령이 이 길을 통해 한양으로 올라와 철종으로 등극한 일도 있어, 양천길은 반드시 슬픔만을 상징하는 길은 아니었다.


지도 - 1913년 일본제국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경성지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