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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고성지(陽川古城地)는 사적 제372호로 강서구 가양동 산 8-4 외 11필지, 가양동 양천향교 뒷산인 궁산(宮山)에 자리한 약 29,390㎡ 규모의 옛 성터이다. 궁산은 한강 올림픽대로변 해발 약 74m의 야산으로 서쪽·남쪽은 완만한 경사로 시가지와 연결되고 북쪽은 한강변 쪽으로 급경사, 동쪽은 유수지와 연결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대동지지』 등에 따르면 성산(지금의 궁산)에 둘레 726척(약 218m)의 고성이 있었고 조선 중종(1531)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당시에도 이미 성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았다. 이곳은 삼국시대 한강 하구를 방어하는 요충지로 서북쪽의 행주산성(사적 제56호), 파주의 오두산성(사적 제351호) 등과 함께 중요한 국경 방어선이었고, 속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였다가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거두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김포 군용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군이 주둔하고,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과 국군이 차례로 주둔하며 궁산 정상 부근이 심하게 변형되었다. 그럼에도 한강변 북측 절벽과 남측 평야 쪽에서는 옛 성벽의 적심석과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가 확인되며,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예로부터 마을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이 자리한다.
전해지는 기록으로는 백제 제22대 문주왕이 475년 웅진 천도 이전 고구려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성으로, 조선 성종대까지 요새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1994년에는 궁산 정상 동쪽에 옛 소악루가 복원되어 강서구민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궁산은 파산(巴山)·성산(城山)·궁산(宮山)·관산(關山)·진산(鎭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파산은 삼국시대 주변 지명 제차파의(齊次巴衣)에서, 성산은 산 위의 성에서, 진산은 양천 고을의 관방 설비에서, 관산은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을 지키는 ‘빗장’의 의미에서, 궁산은 양천향교(유교에서 향교를 ‘학궁(學宮)’이라 칭함)에서 유래했으며, 현재 국립지리원 표준 명칭은 ‘궁산’이다. 6·25 전쟁 직전까지도 성의 상당 부분이 남아 있었으나 환도 직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훼손·파괴되어 현재는 인위적으로 쌓은 몇 개의 석축과 길이 십여 미터 정도의 성벽 흔적만 남아 원래 석성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전라창의사 김천일, 전라소모사 변이중, 강화의병장 우성전 등이 김포·통진·양천·강화·인천 의병을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였다가 한강을 건너 권율 장군을 도와 행주대첩에 참가해 크게 승리했으며, 양천현감들은 매일 저녁 궁산에 올라 강 건너 안현(鞍峴, 길마재)에서 피어오르는 봉화를 관측해 국가의 안위를 살폈다.
또한 성산고성(城山古城)은 현재 성산(城山, 관산)에 위치하며, 과거 둘레 726척의 돌성이 뚜렷했으나 우리 국군과 주둔 미군의 진지 구축과 부대 이동 과정에서 변형되어 옛 성터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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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구 가양동 산 8 —4 외 11 필지 | 사적 제3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