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유래

궁산(宮山) | 성산(城山), 진산(鎭山), 관산(關山), 파산(巴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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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궁산은 성산(城山)·진산(鎭山)·관산(關山)·파산(巴山) 등으로도 불리며, 양천 고을의 주산으로 산 위에 성이 있었다. 옛 고을터가 있었기 때문에 ‘성산’이라 불렸고, 궁이 있는 곳에 쌓은 성에서 ‘궁산’으로 변하였다는 설과, ‘성’이 고개를 뜻하기도 하여 ‘관중’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이름이라는 설이 전한다. 

파산은 삼국시대에 주변 지명이 제차파의(齊次巴衣)였던 데서 유래했고, 관산은 ‘관(關)’이 빗장을 뜻하듯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을 지키는 빗장 역할을 한 산이라는 의미이며, 진산은 양천 고을의 관방 설비가 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궁산이라는 이름은 양천향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공자를 숭배하는 유교 사상에 따라 향교를 ‘학궁(學宮)’이라 부른 데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현재 국립지리원 표준 명칭도 ‘궁산(宮山)’이다. 임진왜란 때 도원수 권율(權慄)이 호남에서 북상해 궁산 정상에 진을 쳤다가 한강을 건너 맞은편 행주산성에서 포진 후 대첩을 거두었고, 전라창의사 김천일, 전라소모사 변이중, 강화의병장 우성전 등이 김포·통진·양천·강화·인천 의병을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였다가 권율을 도와 행주대첩에 참가해 크게 승리하였다. 

파산이라 불리던 이곳에서는 강 건너 안현(鞍峴, 갈매재/길마재)의 봉화를 볼 수 있었고, 파산 아래에는 양천향교가 복원되어 있으며, 산 아래로 한강이 휘돌아 흐르는 배산임수 형국 속에 양천현청이 자리하여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파산 일대에는 여러 정자가 세워졌다. 

궁산의 주룡(主龍)은 관악산에서 이어져 한강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남쪽 들판의 물이 궁산의 용수(龍水)가 되었다. 궁산의 형세는 북쪽이 한강에 임하고 동북쪽은 층암절벽으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으며, 그 아래 맑고 깊은 물은 수십 척이나 되어 예로부터 배를 타고 바라보면 절경이 펼쳐져 술과 시를 즐기게 하는 명승지였다. 

그러나 1928년경 한강 개수공사와 이후 비행장 공사로 석재 채취가 이루어져 고명하던 기암절경과 ‘굴모우(屈慕隅·굴모방지)’는 흔적조차 사라졌다. 『무신증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년, 1503)·『여지도서』·『대동지지』 등의 기록에 따르면 성산에는 둘레 726척(약 218m)의 돌성이 있었고 당시에도 이미 성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궁산(宮山)(양천고성지, 사적 제372호)은 6·25 전쟁 직전까지도 성의 상당 부분이 남아 있었으나 환도 직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훼손·파괴가 심해져, 현재는 인위적으로 쌓은 몇 개의 석축과 길이 십여 미터 정도의 성벽 흔적만 남아 있어 원래의 석성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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