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유래

공암진(孔岩津) | 투금탄(投金灘)

운영자

2026-04-13


공암진(孔岩津)은 현 동쪽 약 2리, 진산(津山) 남쪽에 있으며, 일명 투금탄(投金灘)이라 불린다. 옛날에는 관선(官船)을 두었던 나루였으나, 약 100여 년 전 강 한가운데에 새 섬이 생겨 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관진을 성산 북편 뒷개 포구(일명 고메나루)로 옮겼다. 

이후 다시 작시(鶴市)벌로 옮겼으나, 통행이 불편해 폐지되었고, 관선 5척 중 1척만 남겨 일화진(一花津)에 배치한 뒤 운영을 중단하였다. 개화동 강변의 공암진은 건너편 행주리의 행주나루와 마주하고 있었으며, 공암나루, 공총(孔發), 구멍바위나루라고도 불렸다. 

양화나루와 함께 김포·강화에서 도성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었으나, 선객이 붐비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사선만 있었으나 조선 후기 관에서 나룻배 2척을 배치했고, 양화나루 별장의 지휘를 받았다. 나루 중간쯤에는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어 ‘구멍바위’, 즉 공암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나루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현재는 나루터 근처에 행주대교가 놓여 강 남북을 연결하고 있다. 공암진은 공암나루, 구멍바위나루, 공암도, 공총, 공총진, 공암진 나루 등으로 불렸다.


지도 - 1913년 일본제국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경성지형도 | 국토정보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