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유래

공암마을 | 공암리(孔岩里)

운영자

2026-04-13


공암마을은 예로부터 먹(墨)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특히 황해도 해주의 부용당 먹과 함께 이름을 떨쳤으나, 현재는 그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고려 명종 때 명신 이인로는 1260년에 간행된 저서 파한집(破閑集)에서, 조정에 바칠 먹을 공암에서 제작했다고 기록하였다. 

이인로가 맹성태수로 재직하던 시절, 도독부의 명령에 따라 왕에게 바칠 먹 5천 개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는 직접 공암에 와서 많은 일꾼을 지휘·감독하며 소나무 관솔을 태워 매연을 만들고, 이를 재료로 2개월 동안 5천 장의 먹을 완성해 왕에게 바쳤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을 지켜보았고, 그로 인해 의복은 물론 피부까지 연기가 스며들어 검게 변했다고 전해진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해주의 부용당 먹을 으뜸으로 쳤으나, 이인로가 공암에서 먹을 제작한 이후로 공암 먹이 널리 유명해졌으며, 이는 전적으로 이인로의 공로로 평가된다.


지도 - 1913년 일본제국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경성지형도 | 국토정보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