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암(孔岩)은 현 동쪽 약 2리, 탑산 아래 절벽 밑 가양동 산 1-2번지에 있는 구멍 뚫린 바위로 공암바위·허가바위라고도 하며, 고진(古津, 곧 공암진) 물가 진산 뒤 강변의 ‘골바위’를 가리킨다. 위에서 보면 높지 않지만 강에서 올려다보면 수직 절벽처럼 보이고 자색의 자암으로 이루어졌으며, 바위 안에는 수십 명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어 ‘허가바위굴’이라 불리고(전승에는 열아문 명이 앉을 만한 공간으로 전함), 석벽에는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타지 사람들 중에는 광주바위를 허가바위로 혼동하기도 하며, 우리 민요 ‘바위타령’에도 허가바위가 등장한다. 이 일대는 취수장 건설과 1980년대 올림픽대로 개통으로 경관이 크게 변해 한강과 멀어진 육지가 되었고, 현재는 가양아파트 단지와 학교 신축 공사장 앞, 구암공원 인근에 자리하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위들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지명은 바위의 구멍에서 비롯되었고, 고구려 때 ‘제차파의’로 불렸으며 바위를 뜻하는 한자 ‘파의(巴衣)’에서 양천의 별호가 나왔다고 전해지는데(표기는 ‘파능’ 또는 ‘파릉’으로 전함), 읍치를 양천으로 옮긴 뒤 뒷산을 ‘파산(巴山)’이라 부르게 된 연원도 여기에 둔다.
신라 경덕왕 때 현 이름을 공암으로 고쳤고, 고려 시대 허씨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고려 태조의 견훤 정벌 당시 이 나루에서 도강 편의 제공과 군량미 지원의 공으로 공암촌주의 봉작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경기읍지』 1277년 성씨조에는 허선문이 90세가 넘어서도 태조를 섬기며 출정 군사를 격려한 공으로 공암촌주에 임명되고 그 자손이 양천 허씨가 되었다고 하였다.
허가바위(서울시 기념물 제11호)는 공암에 위치한 바위로 광주바위와 같은 자색 자암이며, 허선문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설화에서 ‘허가바위굴’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고, 공암은 곧 양천을 의미하므로 공암허씨는 곧 양천허씨를 가리킨다.
지도 - 양천군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