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침수의 역사와 위험성
서울 강서구는 왜 반복적으로 물에 잠기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기상 문제가 아니라, 지형·역사·행정 구조가 겹쳐진 문제입니다.
이 영상은 강서구 침수의 뿌리를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합니다.
자연 범람원이었던 땅이 어떻게 ‘수리 식민지’로 재편되었고,
그 구조가 오늘날까지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를 분석합니다.
현재의 강서구 일대는 과거 한강 하류의 자연 범람원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강물이 넘나들던 저지대 습지였고, 홍수는 예외가 아니라 반복되는 자연 현상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기록에서도 한강 연안은 장마철마다 침수가 잦았으며,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수위가 조금만 상승해도 가옥이 침수될 정도”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즉, 강서구는 애초에 ‘물이 드나드는 땅’이었습니다.
1925년 7월, 기록적인 폭우가 한강 유역을 강타합니다.
김포와 양천, 현재 강서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제방 붕괴와 함께 광범위하게 침수되었습니다.
수백 호의 가옥이 유실·파괴되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공동체 자체가 붕괴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사건이었습니다.
이 홍수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이 지역의 공간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계기가 됩니다.
1926년 이후 일제는 한강 하류에 대규모 제방 공사를 시행합니다.
강서·김포 일대는 수리조합 체계 아래 편입되며 인공 제방과 배수 시설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바뀝니다.
자연 홍수터는
식민지 농업 생산과 쌀 수탈을 위한 통제 공간으로 재편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방은 세워졌지만 배수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둑으로 둘러싸인 저지대는 물이 빠지지 않는 구조가 되었고,
침수 부담은 소작농과 주민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당시 신문은 이를 두고
“수리조합이 아니라 수해조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1990년 9월, 한강 수위는 1925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고양군 제방 일부가 유실되었고, 강서·김포 일대는 범람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100년에 한 번 올 재난”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65년 만의 반복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강 하류가 여전히 제방 의존 구조 위에 놓여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강서구는 서울 내 대표적인 저지대입니다.
사방이 제방과 도로, 개발지로 둘러싸여 자연 배수가 어렵습니다.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내부 배수시설과 펌프장에 의존해야 합니다.
시설 용량을 초과하거나 작동이 지연되면 침수는 빠르게 진행됩니다.
2020년대 들어 국지성 폭우가 반복되며
강서구 일부 지역은 단시간에 도로가 잠기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자연 범람원을 인공적으로 가둔 구조적 유산의 문제입니다.
영상 자료
강서구 침수의 역사와 위험성 - ‘자연 홍수터’가 ‘수리 식민지’로 고착되기까지
운영자
2026-04-10